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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 금수, 인간이 살아가는 법-
생명이 있는 것에는 크게 초목과 금수와 인간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
인간과 사물이 본성적으로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문제는 조선 성리학 논변의 3대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핵심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본성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초목의 본성에는 생명이 있으나 지각(覺)이 없다. 금수의 본성에는 생명이 있는 위에 또한 지각이 있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생명과 지각이 있으면서 다시 영묘함(靈)이 있고 선함(善)이 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본성의 정의에 따라 삶의 법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 점을 관찰해 보자.
텃밭을 가꾸다 보면 날마다, 날마다 쑥 쑥 자라나는 자연의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천지는 말씀이 없어도 대 은혜로 살려 주신다” [天地無言 大恩德生] 하였는데
천지에서는 음양조화로 하늘에서는 햇볕과 비를 내려 주시고 땅에서는 영양분을 공급하여 초목을 살려 주신다. 상추며 쑥갓도 살려 주시고, 그와 더불어 잡초도 똑같이 살려주신다. 잡초에게도 왕성한 생명력이 있어 잠시라도 게을리 하여 놔두면 무성하게 자라서 다른 채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채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텃밭의 잡초를 부지런히 매준다. 벌레도 잡아준다.

움직이지 못하는 채소는 사람이 잡초를 뽑아주고 벌레를 잡아 보호해 주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지각기능이 주어져 있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의 경쟁법칙이 적용된다. 육상에는 개구리, 메뚜기, 독수리, 매, 여우, 호랑이, 사자 등 먹히고 먹는 육상먹이사슬이 있다. 해상에도 각종 어류들의 해상먹이사슬이 있다.

미꾸라지와 메기의 사례를 보자. 논에 미꾸라지를 키울 때 한 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넣고, 다른 한 쪽엔 미꾸라지와 함께 메기를 넣어 키웠는데, 메기를 넣어 키운 쪽의 미꾸라지들이 훨씬 더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고 한다. 그 미꾸라지들은 메기에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활발히 움직였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했고, 그 결과 더 튼튼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처럼 미꾸라지를 괴롭힌 메기의 자극이 미꾸라지의 생명력을 키워준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금수들은 서로 천적이 있고 천적끼리 서로가 경계하고 싸워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나간다. 그렇다면 인간의 세계는 어떠한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착함을 지향하는 마음(道心)이나 착함을 지향하는 본성의 영묘함(性靈)이 있다는데 있다. 기질(氣質)의 성(性)은 인간과 동물이 똑같이 지닌 것이지만, 본연(本然)의 성(性) 곧 도의의 성, 의리의 성은 인간만이 지닌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핧는 감각기능이나, 먹고 번식하고 편안 하고자 하는 욕구는 동물과 인간이 똑같이 구비하고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는 오로지 도덕성을 실현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이 금수와는 달리 인간답게 사는 길은 바로 도덕정신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

성훈의 말씀에 “사람에게 도덕과 예의와 법이 있노라-
도덕이 사람이요 사람이 도덕인데 사람으로 어찌 도덕을 모르리요. 만일 도덕을 모른다면 금수보다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이고 금수는 금수로다. 이때는 도덕을 행하여야 살 수 있고 도덕을 모르면은 살 수 없으니 정심정기로써 자체의 비애악기를 다 청소 합시다”라고 밝혀 주었다. (도덕경 57면)

사람과 금수의 다른 점을 분명히 밝혀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인간세계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은 동물의 세계 지배원리를 적용하여 서로 상대방을 해치며 싸워온 것이 아닐까? 동물의 세계 경쟁원리가 단순히 ‘힘에 의한 약육강식’이라면 인간세계의 경쟁원리는 바로 ‘도덕정신에 바탕을 둔 상생상화(相生相和)’에 있다.

초목의 세계에는 ‘잡초와 벌레’가 있고 금수의 세계에는 메기와 미꾸라지의 예화에서 보듯이 ‘천적’이 있고 인간의 세계에는 선과 더불어 ‘악’이 있다. 잡초와 벌레는 제거하면 되고 천적은 힘으로 물리치거나 피하면 되지만 악은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

금수에게는 도덕이 없고 선과 악도 없고, 스스로 자성반성 하는 기능이 없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는 도덕이 있어 선과 악이 있고 착함을 찾아야만 잘 살 수 있는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 비애악기를 청소하는 길이 바로 자성반성법이다. 많은 선현들이 금수와 사람의 차이점은 찾았고 인간에게는 도덕성이 있다는 것은 밝혀냈지만 더 나아가 선화개악의 자성반성법은 찾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요, 본성은 다 착한 것이니 고귀한 생명이요, 100점 인간들이다. 다만 요사한 악사기가 들어가 요동을 치니 그가 악할 뿐이리라. 나를 괴롭히는 요사한 악마기를 잡초요 벌레요 메기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비록 악일지라도 나의 착함을 찾아가는 ‘필요악’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고 [天不生無祿之人]
땅은 착하고 어진 종자를 키워 주신다 [地化長善仁之種]“ 하였다.
이 세상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가 다 제 나름대로의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야 더 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를 괴롭히는 그 금수와 같다고 생각한 인간도 그 본성은 착한데 악사기에 씌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측은하게 생각하고 용서하자는 마음이 들지 않는가! 그래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는가 보다. 요사한 악마기는 기생충과도 같은 것으로, 기생충이 더러운 곳을 좋아하듯 악마기도 미움과 원망 등 인간의 부정적 마음에 전염하고 기생한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 잡혀 먹히지 않도록 미운 마음을 버리고 부정사언을 하지도 듣지도 말며 단단히 마음 단속만 잘하면 됐지, 그 사람을 내치려고 하지 말자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고, 악은 또 다른 악을 낳는다. 악으로써 다른 악을 내칠 수는 없다. “착하게 행하면 착함이 오고 명기(明氣), 악하게 행하면 악함이 오고 초기(焦氣)”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상대성원리이다.

“정도행도처(正道行到處) 요사기자멸(妖邪氣自滅)”이라 하였다.
요사기는 내친다고 나가는 것이 아니요, 죽인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내가 둥근 마음으로 정도가 되었을 때 사필귀정으로 자동으로 스스로 물러간다는 고귀한 말씀을 깊이 음미해본다.

“사불범정(邪不犯正) 요사자멸(妖邪自滅) 정사구별(正邪區別)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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