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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誤性)을 개선(改善)함이 곧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
尹 命 壽
四柱 / 源達群 聖道師
21세기를 한 해 앞두고 2천년대의 첫해 경진년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새 천년에는 성덕의 은덕으로 온 누리에 영화가 가득하고, 도생님들의 가정에 만복(萬福)이 더욱 자생(滋生)하기를 축원합니다.
대저 수도(修道)란, 오성(誤性)을 개선하여 천성(天性)을 회복하고 나아가 인간고(人間苦)에서 해탈(解脫)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그릇된 성질을 고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릇된 성질이 고쳐지는 바로 그 자리에 천성의 착함이 있고, 천성의 선심(善心)을 회복하는 그것이 바로 인간고에서의 해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도 과정이 수월하지 않다며 “얼마만큼 닦아야 다 닦을 수 있겠는가‘고 초조해하기도 하고, 또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과보(果報)의 이치 따라 자신이 받아야 할 업보가 얼마나 될 것인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업보의 크기란 숫자적으로 계산하여 나타내 보일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숫자적으로 계산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해야 하는 한계 영역밖의 일이라 하겠습니다.
굳이 자신의 업보의 크기를 알고 싶어한다면, 자신의 성질 가운데 그릇된 성질이 얼마나 있는가를 스스로 판단해 보라 하고 싶습니다.
착하고 어진 성질을 많이 타고났으면 그만큼 선업(善業)이 크다는 것이고, 모질고 독한 성질을 많이 가지고 태어났으면 그만큼 악업(惡業)을 많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오성을 자인(自認)하게 되기도 어렵고, 또 그것을 자인했다 할지라도 개선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치지 않으면 그 오성으로 인해서 더 많은 악업을 쌓을 뿐이고, 그만큼 해탈의 관문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치기가 힘든다 할지라도 도심과 신심을 바탕으로 오성을 개선하고 나면,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고친 만큼 선성(善性)을 회복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그만큼 해탈의 관문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 과정에서 힘이 든다 할지라도 업보를 짊어지고 고초를 겪기보다는 수월할 것입니다.
“군말 말고 믿고만 닦는다면 깨달으면 알 것이요 알고 보니 행복이네”라고 성훈에서도 가르쳐 주셨으니, 믿고 따를 뿐일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굳센 신심으로 오성을 개선하여 수도(修道)의 차원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