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반성(自性反省)을 심화(深化)해야 金 周 大(現源智 ) 자성반성(自性反省) -. 성덕도의 경전인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自性反省 聖德明心道德經)’ 의 표(標題) 첫머리에 적혀 있는 네 글자의 법어입니다. 표어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고 상징적인 뜻도 함축되어 있는 법어라 할 수 있는 이 ‘자성반성’을, 우리들 도생들은 일상적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는 일’의 뜻으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자성반성이라는 법어에는 보다 광의적인 뜻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그 잘못을 스스로 고치고 나아가 인륜의 도리인 도덕을 실천하는 데 목적이 있으니, 이는 유(儒)의 정신입니다. 또, 잘못을 뉘우침으로써 그 마음을 맑혀 천성의 불성(佛性)을 회복할..
오성(誤性)을 개선(改善)함이 곧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 尹 命 壽 四柱 / 源達群 聖道師 21세기를 한 해 앞두고 2천년대의 첫해 경진년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새 천년에는 성덕의 은덕으로 온 누리에 영화가 가득하고, 도생님들의 가정에 만복(萬福)이 더욱 자생(滋生)하기를 축원합니다. 대저 수도(修道)란, 오성(誤性)을 개선하여 천성(天性)을 회복하고 나아가 인간고(人間苦)에서 해탈(解脫)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그릇된 성질을 고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릇된 성질이 고쳐지는 바로 그 자리에 천성의 착함이 있고, 천성의 선심(善心)을 회복하는 그것이 바로 인간고에서의 해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도 과정이 수월하지 않다며 “얼마만큼 닦아야 다 닦을 수 있..
화심응행(和心應行)합시다. 金 允 載 四柱 / 仁盛智 聖道師 밝은 해는 한결같은 빛으로 만물에 응해 줍니다. 높은 곳 깊은 곳, 깨끗한 자리 누추한 자리를 가리지 않고 비출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부귀빈천의 계층에도 아무런 차별이 없이 골고루 광명의 혜택을 베풀어 줍니다. 그 하늘아래서 땅을 딛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격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사람은, 그 덕을 본받아 모없이 둥근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대하든 밉게 봄이 없이 화목(和睦)한 마음으로 대해야할 것이고, 나아가 주위의 온갖 사물을 대함에 있어도 역시 같은 화심(和心)으로 응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내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화심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모든 기초가 거기서 안정되고 정립됩니다. 평화..
심언행(心言行)의 일치(一致)로 은공(恩功)을 보답(報答)하자. 金 東 伊/ 四柱 宣光智 聖道師 월근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성리심법(性理心法)을 오도(悟道)하사 인류지상염원(人類至上念願)인 자유평화의 도덕사회를 건설하려면 오직 윤리도덕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하면서 인심을 선화(善化)하고 나아가서 세도(世道)를 만회해야 한다고 설파하셨던 것입니다. 제자 된 우리들은 선생님 성전에 일제히 부복하여 구제창생에 주야로 염려하시던 선생님의 위대하신 성지를 상기하면서, 사회의 혼탁한 현실상을 도덕으로써 정화할 사명이 우리들 제자 각자의 쌍견(雙肩)에 부하(負荷)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성훈을 봉수하여 그 유업을 만고에 찬연히 빛내도록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5주기를 맞으면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노력이 그 맹세..
정이로운 마음가짐 우리 도생이라면 언제나 수련에 정진하여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에 먹히는 대로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고 방치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에 길들여지고, 그렇게 굳어져 왔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살아왔는지조차 모르고 살았기에, 돌이켜 보면 참으로 오래 전에 버릇된 것인 것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도덕경을 읽다가 ‘정의(正義)와 사리(邪利)’ 의 법문에 대해 한참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혼자 조용히 법문을 거듭 외어 보았습니다. ‘허공살림 그만 살고 내 살림 살아 보자. 내 일을 하지 않고 남의 것 먹고 빚지고 못 산다 말고, 내 일을 내가 하면 잘 살 수 있노라. 영욕궁..
수양의 목적 수양(修養)의 목적은 천성(天性)의 선(善)을 회복하는 데 있고, 지속적인 수양의 필요성은 회복한 선(善)의 유지라는 데서 그 당위성(當爲性)이 긍정됩니다. 수양을 통하여 착함이 쌓임은 필연(必然)의 귀결이지만, 그 착함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관리를 소홀히 하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기가 쉽고, 정도에서 벗어나게 되면 인간악(人間惡)에 감염됨으로써 쌓아 둔 그 착함의 양이 줄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수양은 한시적(限時的)인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영속적(永續的)인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가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덕(聖德)의 가르치심은,..
희망찬 계사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도생님들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고 지구촌 온 누리에 행복과 영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성덕도는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에 밝혀 주신 덕화의 진리를 받들어, 인생의 근본인 삼강오륜 인의예지 도의도덕을 실천하여 인간고를 해탈하고,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지상도(地上道) 낙천(樂天)인 밝은 도덕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1952년 도주님·법주님께서 도덕법을 세우시고 성덕도를 창도하신 후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고 또 10년이 지난 세월입니다. 그 동안에 대덕의 은덕과 전국의 일선교직자와 도생님들께서 동기일심으로 단결하여 도광을 빛내고자 교화 발전에 정성을 다하였기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홈페..
-초목, 금수, 인간이 살아가는 법- 생명이 있는 것에는 크게 초목과 금수와 인간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 인간과 사물이 본성적으로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문제는 조선 성리학 논변의 3대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핵심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본성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초목의 본성에는 생명이 있으나 지각(覺)이 없다. 금수의 본성에는 생명이 있는 위에 또한 지각이 있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생명과 지각이 있으면서 다시 영묘함(靈)이 있고 선함(善)이 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본성의 정의에 따라 삶의 법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 점을 관찰해 보자. 텃밭을 가꾸다 보면 날마다..
-위대한 자성반성법- 사람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어느 심리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대략 하루에 5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우리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뜻이 바로 온갖 잡생각이 다 난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5만 가지 생각 중 많은 사람들이 90% 이상을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잘 안 될 것이라는 생각,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불평하는 마음, 만족하는 마음보다는 불만족스러운 마음, 존경하는 마음보다는 무시하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보다는 불신하고 의심하는 마음, 남을 칭찬하는 마음보다는 헐뜯고 흉을 보는 마음, 기쁜 마음보다는 섭섭한 마음, 원망, 심술, 짜증, 불평, 불안, 초조, 아상, 자존,..
자연의 법 – 스스로 自, 그러할 然 신(神)은 과연 존재하는가? 1,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 특히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을 본 철학자들은 신(神)은 죽었다고 외쳤다. (신이 있다면 어찌 저런 끔찍스러운 일을 두고 본다는 말인가!) “아우슈비츠 이후의 모든 문화는, 그 비판까지도 포함해서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 아도르노(1903-1969) “이 시대는 옛 신(神)들이 다 죽었고 새 신(神)들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 하이데거(1889-1976) 근대 이후 서양의 종교적 상황은 한마디로 신(神)의 부재와 실존주의 철학의 등장이다. 그렇다면 신(神)은 없는 것인가? 기존(旣存)의 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유대교에서는 야훼를,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을, 이슬람교에서..